영웅담 : 뵐숭 일가 - 시그문트 英雄談

베오울프, 아서 왕과 쿠 쿨린, 그리고 핀 마쿨이 켈트 전승의 이름 있는 영웅들이라면, 북구-게르만 전승에서 가장 이름을 떨친 영웅은 역시 시그문트와 지크프리트(시구르드)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자지간이기도 한 이들은 뵐숭 사가를 통해 그 이야기가 알려졌으며, 훗날 거장 바그너의 서사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를 통해 불멸의 작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뵐숭 일가 비극의 시작, 영웅 시그문트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뵐숭이란, 시그문트의 아버지로, 게르만 일족의 왕 중 하나였습니다.(당시 게르만 부족이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것은 훗날, 대이동에서 알 수 있죠)
그에게는 열 명의 뛰어난 아들들과 아름다운 딸 한 명이 있었고, 그의 궁전에는 지붕을 뚫을 정도로 거대한 한 그루의 고목이 있었습니다.
게르만 일족의 호전적인 성향 때문에 뵐숭 일가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고, 지난한 전쟁의 기간 동안 뵐숭 왕도 노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반목하던 주변 부족의 왕 시게일이 뵐숭 왕의 딸 시그니에게 청혼을 하게 됨으로써, 뵐숭 왕은 이 지리한 전쟁을 멈출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고, 그 결혼 요청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시게일과 시그니의 결혼식이 열리게 된 뵐숭 왕의 궁전에 많은 사람들이 초청되었고, 그 중, 초청받지 못한 보잘 것 없는 한 노인도 경사스런 이 결혼식에서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 노인은 대접에 대한 보답으로, 한 자루의 검을 꺼내 뵐숭 궁전의 거대한 고목 위에 꽂아 놓습니다.

"이 검의 이름은 그람이라 한다. 이 검을 뽑는 자가 곧 이 검의 주인이 될 것이다."

처음엔, 그 결혼식에 참석한 모두가 그 노인의 말을 우습게 흘려 들었지만, 그 검은 매우 아름답고 기품이 흘러넘치며, 또한 귀한 물건으로 보였기 때문에, 서서히 하나 둘 씩 욕심에 이끌려 이 검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노라하는 뵐숭의 전사들과 시게일의 전사들이 모두 달려 들어 보았지만,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뵐숭의 아홉 아들들과 시게일까지 나서 보지만, 검은 요지부동.

모두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늙은 노인이 요망한 자라고 욕하고 있을 즈음, 그 검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뵐숭 왕의 아들 시그문트가 그 검을 뽑아 듭니다.
뽑혀진 검은 꽂혀 있을 때보다 아름답고 더 찬란하게 빛났기 때문에 그 검을 보고 있는 사람은 탐욕에 사로잡혔고, 개중에서도 가장 욕망이 거대했던 시게일 왕은 자신의 처형에게 검의 세배나 되는 무게의 황금을 제안하며 그 검을 결혼 선물로 양도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검의 마력에 매료된 것은 시게일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검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그래서 모두가 뽑지 못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진 이 검에 도전할 생각도 없었던 시그문트까지 이 검에 매혹되어 매제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립니다.

"이 검이 당신 것이었다면, 당신 차례에서 뽑을 수 있었을 것이요."

그리고 이것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시게일은 그가 당한 모욕을 결코 잊지 않는 자였고, 받은 모욕을 반드시 되돌려 주는 자였습니다.
설령 그가 결혼으로 맺어진 아내의 형제들이라 할지라도.

고국으로 돌아간 시게일은, 성대한 결혼식의 보답으로 뵐숭 왕족 모두를 자신의 궁전으로 초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을 놓고 있던 뵐숭 일가를 모두 살해해버리죠.
단 한 사람, 정작 그가 그렇게도 죽이고 싶어했던 시그문트만은 명검 그람의 힘을 빌어 자신의 병사들을 죽이고 성을 빠져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시그문트는 그때부터 복수를 맹세하지만, 이미 뵐숭 가문은 멸망했고, 그 영토는 시게일이 차지해버렸기 때문에, 그를 도와 시게일을 칠 조력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때, 한 아름다운 여성이 자신의 정체를 속인 채 그의 앞에 나타나 그와 밤을 보냅니다.
그녀는 시그문트의 동생이자 시게일의 아내 시그니로, 그녀는 끊어진 뵐숭 일가의 핏줄을 잇기 위해 오빠와 관계를 가지고, 뵐숭의 자손을 낳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을, 시그문트는 숲 속에서 훌륭한 전사로 키워냅니다.
신 피요트리라 이름 붙은 아들이 장성하게 되자, 이 두 사내는 복수를 위해 시게일의 성에 잠입하여 공격을 감행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침입이 발각되자 영웅적인 능력과 명검 그람의 위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복수에 실해하였으며, 그들의 적 시게일이 그들을 보며 비웃는 것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게일는, 그의 성에 또 한사람의 뵐숭이 살아 있음을 간과했습니다.
자신의 오빠와 몸을 섞어서라도 일문의 피를 남기고자 했던 자신의 아내는 그가 잠자고 있는 새, 성에 불을 질렀고, 자신의 악독한 남편과 함께 불타 죽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리하여 잔혹한 시게일 왕이 죽고, 쫓겨났던 시그문트가 새롭게 뵐숭 일가의 왕으로 귀환합니다.
그는 숱한 전쟁 속에 명검의 능력을 발휘해 승리를 거듭하였고, 많은 땅을 정복하고 새 아내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도 어딘가의 누군가만큼 여복이 없었던 모양인지, 그의 새 아내는 자신의 아들이 태어날 즈음이 되자, 또 다른 아들인 신 피요트리가 그의 아들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여기고, 독을 탄 술을 먹여, 그를 죽여 버립니다.

모든 고초를 함께 하며 지내온 아들의 죽음에 시그문트는 분노해 새 아내를 내쫓고, 이웃 왕국의 아름다운 여성 효르디스를 자신의 새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녀가 왕의 아들을 임신하였을 즈음, 예전, 효르디스에게 청혼했던 다른 왕이 시그문트에게 도전합니다.
그 군대에는 쫓겨난 왕비의 아버지가 이끄는 군대도 함께였지만, 왕은 항상 승리해왔기 때문에 분연히 그람을 들고 떨쳐 일어나 그의 군대와 함께 전장으로 달려갑니다.

과연 명검 그람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고, 적을 갑옷 째 베어버려, 감히 어느 누구도 그의 앞을 가로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시그문트는, 전장 속에서 한 사내를 보게 됩니다.
얼굴을 모두 가리다시피 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흰 수염이 가슴에 드리울 정도로 길게 자란 그는, 한 손에는 장창을 들고, 열 손가락엔 황금 반지가 끼워져 있었으며, 한 마리의 준마 위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그에게 그람을 점지한 그 늙은이였습니다.
변덕의 신, 전쟁의 신, 폭풍의 신, 그리고 마법을 추구한 노인.
외눈박이 신은 그의 창으로 그람을 두들겼고, 그람은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수개의 조각으로 깨져버렸습니다.
검을 잃은 왕은 적병의 손에 살해당하였고, 발키리의 손에 이끌려 발할라로 가게 됩니다.

오딘 신은 시그문트를 사랑해 마지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전사로서 가장 소중한 무기를 내려줬지만, 시그문트가 시그니와 관계함으로 인해 결혼을 관장하는 여신이자 오딘의 아내 프리그가 자신을 모욕한 시그문트를 죽이길 졸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람을 파괴하고 시그문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딘 신의 성정을 살펴보면, 그저 시그문트가 너무 탐이 났기 때문에, 직접 내려와 그를 죽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다시 전승으로 돌아와, 시그문트는 전장에서 죽게 되고, 그의 아들은 유복자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시그문트가 전장을 떠나기 전에 지어준 이름, 시구르드였고, 훗날 지크프리트로 더 유명해지게 됩니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mirageno4.egloos.com/tb/2711964 [도움말]
  • [영웅담]비운의 일족. 2009/08/17 10:46 #

    영웅담 : 뵐숭 일가 - 시그문트 잘나가는 영웅 일족 중에서도 비운의 일족 하면, 게르만 족의 시그문트 일가가 가장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이른바 뵐숭 사가라 불리는 이야기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주인공인 시그문트로부터, 그 아들인 시구르드(지그프리트)에 이르는 이야기는 일족이 몰살당하고 그 일족의 후예가 죽임을 당하고, 후에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살해하고 살해당하는 비극적 이야기로 치닫습니다. 1. 뵐숭 왕시그문트의 부친...... more

덧글

덧글 입력 영역



야구가 좋아